웹진 '크릿' 창간 기념 집담회

웹진 '크릿' 창간 기념 집담회

미술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지 않는 것

크릿

2026-09-30

1. 행사 소개 및 식순 안내 (5~10분) 

행사 취지 및 웹진 소개 

진행 순서 안내 

2. 패널 소개 및 발제 (총 60분) 

각 발제는 15분입니다. 종료 3분 전에 따로 알려드리겠습니다. 

원활한 진행을 위한 시간 관리이니 너른 양해 부탁드립니다. 

1)허호정 (큐레이터, 웹진 크릿 객원편집위원, 2027년) 

동시대 서울 미술 공간에서 "사회적인 것"의 위치와 의미 

2)이진실 (비평가, 웹진 크릿 창간·편집위원) 

"소셜미디어가 미술을 망친 것일까요?", 미술 매체와 SNS 풍경에 대하여 

3)김화용 (작가, 웹진 크릿 객원편집위원, 2026년) 

"새사람이 될 수 있을까?", 미술-실천-연대의 여러 예시와 연대 없는 미학에 대하여 

4) 남웅 (비평가,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활동가, 웹진 크릿 객원편집위원, 2028년) 

"찡찡의 역량", 퀴어 정치학으로서 "찡찡"의 긍정적 힘과 그 가능성 

3. 휴식 (10분) 

4. 패널·사회자 대담 (20분) 

아래 질문은 각 발제에서 예상되는 쟁점을 중심으로 준비했습니다. 다만 사회자의 질문에 답하는 형식보다는, 패널 여러분이 서로에게 질문을 건네주시는 편이 가장 좋겠습니다. 질문이 아니더라도 공감하신 대목을 짚으며 대화의 물꼬를 터주셔도 좋습니다. 

1)공간

미술이 "신부족주의화"되고, 끼리끼리 버블을 이루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늘 있어온 일입니다. 그럼에도 오늘날 우리는 왜 이 현상을 특히 문제적이라 느끼는 걸까요? 과거와 비교해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요? 이것은 세대의 문제일까요? 혹은 미술이 본래 자본과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이 이제 드러났을 뿐이고, 우리가 그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 뿐일까요? 

창간기념회 모습

2)매체

미술 잡지뿐 아니라 SNS에서 자극적인 의견이 부각되는 것은 그 매체의 본래 속성이기도 합니다. 관심이 곧 자본인 시대에, SNS에 접속해 있으면서 동시에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라는 요구는 사실상 불가능한 요구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밖으로 나가 시위에 참여하자"는 요청은 디지털과 오프라인의 분리를 전제하는 것은 아닐까요? 두 세계 모두에 속할 수밖에 없는 세대에게 우리는 어떤 저항의 형태를 상상하자고 제안할 수 있을까요? 

3)예술-실천

오래된 질문입니다만, 예술이 곧 실천이자 개입이며 행동임을 알고 또 긍정하는 우리는, 동시에 예술가의 이름이 운동 전체를 대표하는 이름이 되지 않도록 경계하기도 합니다. 단독적 저자로서의 이름이 아니라 행동과 실천의 단위이자 행위 주체로서 예술가의 이름을 상상하기 위해, 어떤 구체적인 태도와 방법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예술이 세상을 바꾼다면, 그것은 어떻게 가능할까요? 1

옥티비우스 힐 
뽀큐 이스라엘
미친놈아....

4)정치

오래된 질문입니다만, 예술이 곧 실천이자 개입이며 행동임을 알고 또 긍정하는 우리는, 동시에 예술가의 이름이 운동 전체를 대표하는 이름이 되지 않도록 경계하기도 합니다. 단독적 저자로서의 이름이 아니라 행동과 실천의 단위이자 행위 주체로서 예술가의 이름을 상상하기 위해, 어떤 구체적인 태도와 방법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예술이 세상을 바꾼다면, 그것은 어떻게 가능할까요?

— - 프리드리히 니체

 

계속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찡찡"은 중요합니다. 이는 킬조이 페미니즘과 유사하게, 퀴어 예술가 주체의 형상을 불평하는 자에서 개선하는 2자로, 변화시키는 자로 전환하는 프레임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예술만큼이나 삶에 대한 기술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삶에 우선하는 예술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술가에게는 무언가가 더 요구되지 않을까요? 아니면, 요구하지 말아야 할까요?3 

5. 관객 질의응답 (2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