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프랑 빵 같은거 같이 나오면 좋겠다
수프랑 빵 맛있겠다
2026-09-01

참사에 대한 애도가 끝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건, 여전히 이태원 참사가 아무것도 이야기되지 않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놀이가 생산성이 없는 것으로만 치부돼서 쉽게 혐오를 당한다든지, 이태원이 정상성에서 논외된 장소로서, 이국적이고 퀴어적인 공간으로 그저 외부화되어서 애도의 장소에서 제외된다든지, 그런 관점들로 인해서 이게 슬퍼할 죽음으로 읽혀지지 않고 그저 혐오 발언만 계속 발생하니까. 이런 문제들을 다 같이 슬퍼할 수 있는 문제, 애도의 문제로 전환하려고 하고 싶었는데…지금까지도 어떤 것도 이야기가 안 된 채로 그저 뭉개져서 넘어갔고. 지금 와서 사람들은 그냥 ‘이태원 참사 안타까운 사건이지’ 이렇게 생각하고 넘어가잖아.
참사가 갖고 있는 어떤 징후적인 지금의 문제가 전혀 이야기 되지 않아서, 그러니까 사실은 잘 애도되지 않아서, 애도를 끝낼 수가 없는 것 같아.


E …1호 얘기하니까, 이때 이태원에 있는 온갖 케밥집은 다 다녔잖아. 그래서 재밌는 게 진 1호에 케밥집 사진이 꽤 많아.
H 내가 1호 만들면서 케밥 이미지를 많이 썼어. 이 케밥 이미지들 다 E의 사진이잖아. 그때 막 우리끼리 질리도록 케밥을 먹으면서, 이태원 케밥집 다니는 것도 수행이라며 미친놈처럼 얘기했어. 맨날 이태원을 와야 하니까. 막 저기 어디 이태원시장 쪽에 있는 무슨 카페에서 얘기했던 듯. (사진을 가리키며) 이 사진도 할랄 가이즈네. 할랄가이즈 없어졌더라.
E 진짜?
H 어 저번에 R님이랑 냐피갔을 때 슬쩍 보니까 텅 비어 있더라고.
E 너무 슬프다.
H 여기에 아마 E가 최근에 보여줬던 옛날 이태원 스포츠펍 사진들 같은 거 좀 있을 걸. 여기가 거기잖아.
E 맞아, 이거 맞아. 여기 옛날에 살던 집이고. 이것도 거기야 맞아 맞아. 그 건너편이 참사 골목.

여전히 잘 모르겠다. 한동안 그 길을 걸을 때 죄책감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빠른 걸음으로 바닥을 바라보며 지나가기에 바빴던 것 같다. 전에 살던 집과는 불과 두 블럭. 주말 밤 침대를 조용히 울리는 음악의 베이스는 간혹 장송곡 같기도 자장가 같기도 하다는 생각을 하며 잠이 들곤했다. 그 무렵 집에서 기르는 화분들이 급격하게 시들어 갔고, 죽은 잎들을 잘 버리지 못하게 되었다. 몇 해의 시간이 흘렀고 여전히 잘 모르겠다. 그 무렵 친구의 죽음 때문인지 집에서 두 블럭 거리의 일 때문인지 여름에서 가을로 바뀌는 시간이 달가우면서 까슬거린다. 아주 먼 거리의 두 사건이 같은 달 비슷한 형태로 다가오고 이상하게도 난 그 둘을 잘 분리할 수가 없다. 계절도 시간도 감정도 다 뒤얽혀 아무것도 지칭할 수 없게 되는 상태가 되는 듯 하다. 그래도 모든 걸 곧잘 까먹고 눈앞에 닥친 일들이나, 사소한 걱정거리들을 생각하며 시간을 보낸다. 얼마 전 친구의 어머니께 소화가 안된다는 말을 했고, 몇 일 지나서 양배추즙을 선물받았다. 친구가 살아 있었다면 분명 주었을거라고, 잘 모르겠지만 믿기로 했다. 꼬박 꼬박 잘 챙겨먹으려 하고 있다, 곧 10월이다.
S 어쨌든 지금 우리 세대에서 세월호랑 이태원 참사를 겪으면서, 계속 우리에게 죽음이 너무나 가까워져서 익숙하게 애도의 환경에 놓여있어 왔던 것 같아. 우리가 애도를 되게 일상적인 감정으로 느끼는 게 있는 것 같고. 그래서 애도가 멀게 느껴지지도 않고. 우리가 계속 작업으로 애도의 주제를 가져가다 보니까 나만 착각을 하는 건지 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애도가 일상에서 멀리 떨어졌다는 생각은 안 들거든.
E 적개심도 그 일상적 애도의 옆에서 같이 계속되고. 나는 애도하면 요즘에 떠오르는 건 적개심인 것 같아. 오히려 뭔가 참사라는 것이 애도보다도, 혹은 참사에 대한 충격보다도 계속 뒤에 따라오는 혐오의 발언들이 더 커지는 것 같아. 그 시간에 사람 수백 명이 사라져도, 거기에 따라오는 애도보다 혐오가 더 길게 가는 편이지.
H 참사 세대가 느끼는 감각은 오히려 그 충격에 대한 무감함인 걸까? 쉽게 그런 얘기들을 하잖아. 뭐 이태원 참사에 대해서 얘기한다고 하면, 다른 사건과 참사들은 왜 언급 안 해? 뭐 이런 식으로 얘기를 하잖아. 여러 가지 참사들이 있고 그것이 어떤 죽음 자체로 읽혀지는 게 아니라 그냥 되게 무감하게 지나갈 어떤 수많은 사건으로만 읽혀지는 걸까.
S 그렇게 무감하게 되어버린 게, 그저 혐오적인 표현만 오가는 풍경만 봤던 것에 대한 경험에서 오는 약간의 무력함, 모든 게 혐오의 정치로 바로 넘어가 버리는 거에 대한 익숙함? 이번에도 그냥 다시 혐오되고 다시 무감각하게 넘어가 버리겠지 하는 그런 감각에서 기인하는 것 같아.
참사와 상실에 대한 이야기는 이입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일까? 당신이, 당신의 가족이, 친구가 이런 일을 겪었을 수도 있다. 당신의 사람이 그런 일을 당해선 안되는 것처럼 저 사람도, 저 사람의 사람도 그런 일을 당해선 안된다. 연대에 대한 요청은 ‘내 사람’의 범위를 넓히길 요청하는 것일까? 어떤 순간들엔 이입에 기반한 설득이 어렵게 느껴지곤 한다. 오히려 이입은 우리가 서로에게 타자임을, 완전히 같아질 수 없다는 것을 더욱 강하게 느끼게 되는 과정인 것 같기도 하다. 내가 겪은 상실이 누군가에게 같은 상실이길 기대할 수 없는 것처럼 나는 누군가가 될 수 없다. 이입은 나 자신을 설득하는 데에도 실패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의 동력이 이입에 기반했었다면, 이입이 흐려지는 순간에는 어떻게 계속 움직일 수 있을까. 아니면 애초에 이입이 아니라 자기중심적 몰입이었던 것은 아닌가? 계속 이입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과연 애도의 과정인걸까? 종종 범위라는 것이 완전히 붕괴되는 순간을 바라곤 한다. 너와 같아지고 싶다는 불가능한 망상은 사실은 내가 너와 같지 않더라도 내가 너에 대해 말할 수 있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내가 아닌 타인이 되려고 했던, 그 이입의 마음에 지난히 뒤따라온 몸과 마음은 결국 너덜해진다. 그렇게 소진된 상태에서 사람은 어떤 방식으로 계속하고 존재할 수 있는지. 여전히 눈을 시뻘겋게 뜨고 있을 수 밖에 없는 누군가에게는 항상 지독한 기만이지만, 어떻게든 애도를 계속하기의 방법으로 나는 누워있는다. 누워서 천장을 가만히 쳐다보고 버틴다. 겨우 귀와 눈을 닫고 벌레처럼 몸을 웅크리고 침대 바깥의 삶을 상상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이는 어쩌면 계속하기가 아니라 모든 감정을 미루고 무뎌진 채로 멈추기일 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걸 일종의 계속하는 방법이라 말한다면, ‘그저 보내버릴 수는 없는’ 마음이 계속 주머니 속에 덜그럭거리기 때문이다. 그 마음은 덜그럭거려 미약하게 어떻게든 지속하게 한다. 심지어 지속될 그것이 이젠 어쩌면 더 이상 애도가 아니라고 해도 말이다. 이렇게나 기만적으로 그것의 옷자락을 어떻게든 붙잡는다. 그것이 결국엔 마음같은 것이 아닌 겨우 형식 따위가 되어버릴지라도 붙잡는다. 그러나 애도는 다시 한 번 손 사이로 빠져나가고, 다시 침대에 누워있을 뿐. 몸과 마음은 분노와 슬픔 뒤의 기만적 평안으로 불길하게 잠잠하다. 이 평온한 무기력감. 평안하게 무딘 침대에 누운 등이 무언가로 인해 배긴다. 그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그것과 함께하는지, 채이거나 켕기는 것이 정말 말대로 자연스레 그저 흘러보내질 수는 있는지, 여전히 모른다. 여전히 기만임에도 눕다가 잠깐 서서 무언가를 한다.
S 과연 애도의 공간을 어떻게 꾸밀 것인가.
E 잠깐만 a4같은 거라도 좀 갖고 올게, 메모. 펜은 여기 있어요.
S 애도의 공간을 어떻게 꾸밀 것인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지. 사람들이 각자 뭔가를 가져갈 수 있는 공간이 있었음 좋겠어.
E 공간A를 그려보자. 여기 이렇게 계단이 있고 화장실이고 그 다음에 여기 이렇게 단차가 있어서 계단이 있고 여기가 창고. 이렇게 돼 있나, 그 다음에 여기 기둥이 있고.
S 맞아. 그리고.
E 어 이렇게 있지 이런 구조지 맞아 맞아.
S 여기는 이렇게.
H 여기도 이렇게 둘러싸서 올라와 있지.
E 진짜 특이하다. 목욕탕 구조잖아 일종의…
S 그럼 이렇게 둘러싸여 있잖아. 그러면 나는 이쯤에 합판을 놓고 공동의 그리기를 했음 해.
E 여기다 두자. 정면에 제일 잘 보이게 그래서 그냥 여기를 같이 좀 꾸밀 수 있게 정면에 두는 게
S 나는 근데 약간 들어왔을 때 이렇게 됐으면 좋겠거든 텐트처럼? 사실 공간A가 너무 안예쁘잖아. 그래서 약간 이렇게.
H 아예 천막이었으면 하는거지?
S 천막이었으면 좋겠어. 그러니까 입구에서 봤을 때 이게 합판이고 이게 천막으로 이렇게 되고 여기서는 사람들이 이쪽 기둥이 이렇게 있으니까 이렇게 비즈 공예하고있고 테이블 여기 사람들이 이거 붙이고 있고 이런 식으로.
E 괜찮은 것 같은데 임시적이고.
S 근데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어.
E천막의 형태가 진짜 천이 아니고 그냥 개인적인 의견인데, 천장에 뭔가 행잉을 한다면 거기에 또 천장이 낮잖아. 천막의 구조는 뭔가 임시적이고 캠프같은 느낌으로. 괜찮은 것 같아.
그리고 스프. 스프 준비는 뭐가 필요할까?
H 어떤 스프?
E 마녀 스프?
S 아니. 사람들을 따뜻하게 할 수 있는…. 추울 테니까
E 수프랑 빵 같은거 같이 나오면 좋겠다. 같이 한 두조각씩. 스프접시 깊은 거 있잖아. 빵도 같이 한 두조각 꽂아주고. 그냥 먹으면서 비즈도 만들고 그냥 글도 좀 읽어보고.
H 먹을 거를 주면 머물 수 밖에 없으니까.
E 좋은 것 같아. 스프 주는 거 너무 좋은 것 같아. 그리고 밤에는 술도 주고.

함께 있으면서 즐거운 일들이 많았다. 즐거워도 되냐고 매번 자문하긴 하지만. 우리는 왜 애도를 계속할 수 있는걸까? 힘과 동력은 죄책감. 부채감. 어찌되었든 계속 해야만 한다는 마음 같은 것들. 그리고 또 함께함의 즐거움.
참사와 죽음을 삶에서 계속 함께 가져간다는 건 물론 많은 무거움을 동반하지만, 그저 무거움이 다라면 지속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분명 이야기를 나누고 같이 하는 것이 필요하다. 같이함은 지속할 수 있는 힘과, 아이러니하게도 즐거움 또한 준다. 그리고 그 즐거움은 우리에게 지속가능성을 준다.
그러니까, 우리는 계속 같이 즐거울 수 있기 때문에, 계속 같이 슬퍼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다. 즐거움 가운데에서 나의 얼굴이 너의 얼굴이 되고, 너의 얼굴이 사람들의 얼굴이 된다. 그러니까 내가, 너가 곧 모든 사람들이기 때문에. 너의 얼굴은 나에게 즐거움을 주고, 그리고 다시 계속 내 옆에서 죽음을 떠올리게 하고, 너의 얼굴은 나에게 자꾸 다시 즐거움을 주고, 그리고 그 즐거움으로 다시 죽음을 떠오르게 하고. 반면 즐거움으로 다시 잊을 수도 있고. 같이함은 즐거움을 주고, 같이함은 즐거움을 주기 때문에 너의 얼굴을 자꾸 떠올리게 되고.
즐겁기 때문에 계속 할 수 있고, 즐겁기 때문에 슬퍼할 수 있고, 즐겁기 때문에 잊을 수도 있고, 즐겁기 때문에 고통을 떠올릴 수도 있고. 그리고 즐겁고 싶어서 자꾸 잊고 싶을 수도 있겠다. 즐겁다 보면 죽음이 다시 떠오르고. 폭죽이 자꾸 폭탄으로 보이고. 하지만 가끔은 모든 걸 무시하고 아름다운 폭죽으로만 그걸 보고 싶기도 하다. 그러다가도, 너의 얼굴이 떠오른다.


어쩌다가 이사를 오게되었더라.
5층에 살던 집주인이 날 너무 괴롭혀서 였나, 그랬을 거다. 급하게 집을 내놓고 빠르게 나가게 되었지.
왜 이태원 우사단길이였을까. 잘 기억은 나질 않지만 외국에 있는 친구가 잠깐 한국에 들어온날 같이 이슬람 사원 부근의 커피숍에서 만나 주변을 거닐었고, 너랑 잘 어울리겠다는 말에 혹했던 것 같다. 여기 살면 무엇인가 즐거운 일이 많이 생기리라 막연한 기대감도 있었다.
생각해보면 좋은일이 많았다. 비록 겨울에 보일러가 터져 학교에 가기 전 이태원 랜드에서 씻고 가거나, 벽 빈틈에서 끊임 없이 벌레가 나오고, 누수로 옷방이 무너지긴 했지만 대체로 즐거웠다. 이태원역에서 도깨비 시장 부근의 집까지 걸어가는 길이 끝없이 늘어나고 줄어들고 용산01번은 대체로 오지 않았다. 막상 버스에 타더라도 순천향대학병원까지 갔다가 도깨비 시장으로 돌아오는 코스지만. 한해가 채 지나기도 전에 우리 동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 무렵 어쩌다 아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던 것 같다. 이름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그들이 나에게 뭐라고 했는지도. 한명은 유학은 간다고 했던 것 같고, 누구는 동생이 미술은 한다고 했나, 누군지도 모르는 디제이와 감자탕에 소주를 마시기도, 사람 없는 클럽에서 혼자 멍하니 서 있다 나오기도 했다. 시간이 조금 흐르고, 우사단은 사라졌고 그럼에도 이태원은 여전히 이국적이고 다양성으로 뒤덮여 있다며 케밥과 모조 야자수를 흔들고 이제 나는 나이를 조금 더 먹었고 이제 이태원이 우리 동네 같지는 않지만 다들 잘 지냈으면 좋겠다.
*
S 이태원 얘기를 P씨랑 할 때, P씨가 한국 사회의 주류성이 밀어낸 사람들이 낮은 집값을 가진 주거지인 이태원, 특히 보광동에 살게 된 것인데, 그 장소의 예외성을 가지고 위험하다고 하면서, 다문화적인 이미지를 갖도록 어떤 문화를 고취시키는 공간으로 써먹기도 하는, 그런 예외성이 자원화되어 있는 공간이라고 얘기를 해주잖아.
E 이태원은 약간 되게 모순적인 공간이기도 해. 장소에 있는 온갖 예외적인 면모들, 이국적인 것들은 모가지를 쳐버렸는데도, 그래도 여기 ‘이국성’이 있어요 라고 이태원 자체를 기호화를 해서 내미는 거지.
S 어떤 삶 자체를 바라 보는 것에 대해서 집중되어야 하지. P씨 인터뷰 하면서 이태원에서 밀려난 삶에 대해서 그런 생각이 들었거든. 그 지금 우리가 이태원을 바라볼 때 보는 이태원 힙스터들 이전에 이미 기지촌 성매매 여성들이 있었고.
E 맞아 P씨 말 중에 되게 좋았던 게, 그 몸들을 관통하면서 이태원에 있는 이국성의 자원화와 그 구조들이 이루어졌는데, 그 몸들 자체는 실은 전혀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


E 3호는 <케밥 애프터 드링크> 라는 진 제목에 가장 어울려. 진 안에 이태원 풍경이 있잖아. 그러니까 이태원의 어떤 정서를 담고 싶었던 것 같아. 사람들이 밥 먹고 술 먹는 그 어떤 정서, 거리의 정서, 길의 정서.
H 이게 이태원의 풍경이 직접적으로 담겨 있지만서도 사실 제일 우리가 목표했던 바대로 우회적이었지.
E 이거 우리가 아침부터 밤까지 찍었잖아. 하루 종일 진짜 12시간 찍었잖아. 게다가 사실 타인의 도움이 되게 많았어. 엄청나게. W만 봐도 진짜 12시간 동안 처음부터 끝까지 다 있어주고. 찍힌 사람들도 다 기꺼이 와주고.
S 예를 들어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이 진을 봐. 그러면 뭐 그냥 케밥 먹는 사진만 있네.라고 생각하거나, 심지어 케밥인 걸 모를 수도 있어. 심지어 부리또를 먹고 있네 이런 생각할 수도 있거든. 어쨌든 뭔가를 길가에서 계속 먹는 사진이 들어간 진이구나 라고 생각을 했다가, 케밥인걸 알고 나서 케밥을 왜 먹었지? 그냥 이 정도에서 끝날 수 있는 진이란 말이야. 근데 그 독자가 사실은 다 읽고도 아무것도 모른다는 점이 우회이기도 하잖아. 딱 봤을 때 알게 되면 우회가 아니잖아. 그런데, 독자가 읽고 나서도 아무것도 모르다가 나중에 ‘이거 사실 이태원 참사의 애도에 관한 거였어요’가 전달됐을 때, 우회가 먹히는 전략이 되는 것 같기도 한데, 근데 ‘사실 이런 거였어요’라고 까지 전달하기가 되게 어렵기도 하단 말이야. 그럼 우회해서 뭔가를 건드리는 것도 아니고, 그냥 아무것도 아니게 될 수도 있잖아. 그냥 케밥 먹는 사진이네, 사진 예쁘다 이러고 가져갈 수도 있는 거고. 실은 사진 예쁘다 하고 가져가는 게 우리가 바라는 거기도 했고. 그러니까 그게 되게 애매한 거지. 뭔가 우회하고 싶은데 우회해서 얘기하는 게 전달되냐, 그거는 완전 독자의 적극성에 달려 있는 거지. 사실 난 존나 계몽주의자이기 때문에 이게 무슨 의미가 있냐라는 생각도 들기도 하지. 그런데 나는 내가 애초에 우회를 하고 싶었던 이유는 내가 존나 계몽주의자라가지고 사람들이 이제 좀 뭔가를 들어줬으면 좋겠는데 안 들으니까 우회를 해보자, 나는 존나 계몽주의자니까 어떤 다른 방법을 취해보자라는 어떤 계몽주의적인 생각을 했던 거란 말이지. 근데 사실 아무도 모를 거란 말이야. 이 우회가 어느정도는 그 계몽주의적인 관점에서 탄생했다는 것을… 그리고 사실은 셋 중에 나만 계몽주의적인 꼰대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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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모르겠단 말을 반복한다. 이제야 뭔가를 알겠어! 이런 말은 나올 가능성이 없다. 정말 애도가 무엇인지, 내가 뭘 하고 있는지 잘 모른다. 어느 순간부터 누군가를 설득하고 싶다는 생각이 사라져버렸다. 설득은 엄청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는 행동인가 싶다. 설득이란 건 내가 믿고 있는 걸 남에게 전도하는 것과 비슷한 거 아닌가. (난 전도를 싫어한다.) 다른 사람과 내가 동일한 만큼 어쩌면 믿음의 가치 또한 동일하다고 볼 수도 있는데, 대체 내가 뭐라고 저 사람의 믿음을 침범할 수 있는걸까? 내 믿음과 저 사람의 믿음의 가치가 다르다고 어떻게 얘기할 수 있을까.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나? 내 믿음이 맞는 것이라고.
아니 그런데, 누가 죽어버린 걸 혐오하고 없애버리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고, 내 믿음이 맞아. 이렇게 말하고 싶기도 하다. 여기선 우리가 다 같이 애도를 해야 해 분명. 계속 흔들린다. 불완전하다. 상대적이고 순간적이며 불완전한 태도와 윤리 뿐이다. 완벽하게 너와 나의 관계를 판단할 수 있는 것도, 완벽하게 올바르고 정당하며 윤리적인 것도 없다.
*
S (kebab after drink vol 4. 읽는 중) 저때 나는 대체 내 집 앞에 다른 사람이 오토바이를 자꾸 대는 사건을 얘기하면서 거기에서 애도 얘기를 왜 하지? 이해가 안가.
H 이때 모든 회로가 다 애도로 연결이 되어가지고. 그러니까 애도라는 게 어떤 공적인 활동이라고 치면, 그 사람의 사적인 삶에 ‘당신도 애도를 해야 돼요’ 라고 요구를 할 수 없는 거랑, 공적 공간인지 사적 공간인지 구분이 안 되는 내 집 담벼락 앞의 오토바이를 치워달라고 할 수 없는 거랑 동기화시킨 거지.
E 근데 너무 재밌는 건 뭔지 알아? 오토바이를 담벼락 앞에 놨던 커플이 이젠 헤어져서 그 오토바이를 담벼락 앞에 놓을 사람도 없어. (웃음)
S 근데 내가 이거 보면서 드는 생각인데 이때가 생각이 차라리 더 깊었다. 지금은 생각이 없어요.
H 이때는 약간 미친 거지.
E 어지럽다. 갑자기 과거로 확 간다. 저 얘기들로.
S 실은 담벼락이라는게 사유지처럼 취급되기도 하고 실은 공유지이기도 한, 애매모호한 경계잖아. 사실 그 사람이 나한테 여기 네 집 안도 아니잖아, 네 영토가 아니잖아라고 하면 내가 할 말이 없어. ‘합리적’으로 따졌을 때 이게 내 영토가 아닌데 내가 이 사람한테 오토바이를 치워달라고 말 할수가 없듯이, 내가 타인에게 애도는 필요한 거라고, 해야한다고 말해도 되나, 이런 생각을 그때 했었단 말이야.

자의 눈금을 따라가듯 그 시간들의 사이를 명확히 재어 잘라낼 수는 없다. 자의 눈금대로 잘라보려고 해도, 수직 수평을 제대로 살펴보지 않으면 그 칼선의 끝에는 너무 많은 차이가 발생한다. 그렇듯 정확히 측정하고 가르기 어려운 것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 당시에 있던 친구와 강아지의 죽음 이후에 내가 달라진 것인지, 함께 이야기하고 있는 참사 이후에 내가 달라진 것인지 잘 모르겠다. 이상하다. 그 친구와 강아지와는 애초에 함께 관계를 맺었던 사람이 많지 않지만, 그것을 함께 기억하는 사람들은 도저히 거리를 벌릴 수 없는 기억이기 때문인지 그에 대해 좀처럼 이야기하려고 하지 않았다. 반대로 참사에 대해서는 말을 많이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항상 너무 헷갈리는 것이다. 그곳에 머무르려고 한다는 건 망상인거다. 각각 다 다른 죽음과 상실들이 있는 것이다. 완전히 당신과 같은 그곳에 있을 수는 없다.
너는 이입과 말하기가 분리되지 않아서, 이입이 어려워졌을 때 어떻게 계속 말할 수 있을지가 고민이라고 했지. 물론 슬프지, 그런데 그때처럼 슬프지 않은데 어떻게 계속 말해? 그러게. 그럼 이입에서 출발하지 않는 애도는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그것은 스스로 믿는 윤리에서 출발하는 것일까? 혼자서 그런 질문을 하다보면 결국 다시 돌아오는 건 답답함이다. 분명 내 친구와 강아지를 함께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부재가 남아있을 텐데, 마치 친구와 강아지의 삶과 역사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언급을 전혀 하지 않는 게 답답한 것이다. 삶은 계속 이어지고 나도 이제는 기일 정도만 챙기게 된 주제에도, 모두가 이 죽음이 마치 없었던 일처럼 매일을 보내는 것이 화가 나는 것이다.

S 더 이상 눈물이 나지도 않고 분노하지도 않고, 이입도 안 되는데 어떻게 뭘 하지?
H 그러게. 우리는 항상 죽음을 얘기하는 데 있어서 우회를 선택하는 게 우리의 중요한 점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우회를 하면서 계속 죽음과 멀어지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이런 얘기도 너가 했잖아.
E 이거는 우리 안에서 의견이 갈리는 거잖아. 이입이 동력이 아닐 수도 있는거고.
S 나는 내가 Kebab after drink 5호에서 그렸던 마지막 컷의 상태 이후로 별로 나아지고 있는 것 같지가 않아. 그러니까 5호 마지막에 보면 어떻게든 일단 스팸메일같은 편지를 억지로 어떻게든 보내면서 끝나잖아. 그때는 차라리 애도가 스팸메일처럼 여겨지더라도 그것을 계속 보낼 수 밖에 없다는 것에 대해 참담한 마음이라도 있었지. 지금은 사실 참담하지도 않고, 참담함에 익숙해져서 아무런 감정도 생각도 없는 채로 애도를 지속하니까. 더 억지스러워진 거지. 어떻게 보면.
E 그거는 뭐 하다 보면 그럴 수밖에 없지. 처음 같은 감정을 계속 갖고 가는 사람이 어딨어. 그 분노를 몇 년동안 계속 갖고 가다간 사람이 먼저 지쳐서 떨어지지. 그렇게 못하지. 그 얘기는 이제 참사 유가족들이 어디 해외여행 가서 노는 사진을 올렸다고 욕 먹은 거랑 다를 게 없는 거잖아 결국엔. 지금은 그 사람들도 쉴 수도 있고 놀 수도 있고 그렇다 해도 마음속에 그게 한 켠에 사라지지 않는 것이 있는 건데.
S 나는 그 마음 속 한 켠에 무언가조차 사라진 건가 이런 생각도 들어.
E 근데 어쨌든 뭐 사라졌다고 한들. 어쨌든 우리는 zine을 9호까지 내기로 한 서로에 대한 계약이라는 것이 존재하잖아. 구두긴 하지만. 그럼 어쨌든 강제성도 그럼 여기에 붙는 거지. 어쨌든 9호까지 어떻게든 해내겠다는. 그게 어쨌든 계속 나도 너네랑 회의하고 막 상태 안 좋아도 그래 9호까지 해야지가 원동력이 될 때가 되게 많단 말이지. 이 강제성이라는 게.
H 나는 강제성에 대해서 사실 동의하는 게, 9호까지만 하고 그만하겠다는 약속이 어떤 시간 제한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은 적어도 그때까지는 하고 끝내겠다는 약속 때문에 오히려 더 긴 시간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거든.
그게 동기가 되는 것도 맞고 뭐 우리 공간 합에서 했던 전시에서 돌봄 얘기하는 거랑 사실 같은 거지.
우리가 계속 돌봄을 지속하는 게 맞는지, 실은 진짜로 돌봄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는데도 일단 하는 거. 우리가 그 H쌤 연락 왔을 때 우리 작업이 연대에 대한 거라고 얘기해주셨음에도, 우리가 다른 것들과 연대하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계속하는 이유는 우리가 그런 약속을 했기 때문에 그 약속을 지키는 것만큼은 우리 안에서 옳은 거다라고 생각하고 계속 가는 거니까. 그래서 그 약속이 주는 강제성이 나한테도 동기부여가 되는 부분이기는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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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발을 들고 길거리에 나서는 사람들은 대단하다. 현수막을 들고 유가족 옆에 있는 사람들도. 참사 생존자를 조사하는 사람들도. 내가 계속 피하는 문제중에는 유가족적 애도에 대한 문제가 있다. 생존자는 만났지만 유가족을 만난 적이 없다. 그 잴 수 없는 슬픔 앞에서 감히 내가 당사자성이 없는 애도를 하겠다고, 혐오하는 사람들 앞에서 우회를 해보겠다고 얘기하는 것이 상상이 가질 않는다.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 마음을 어느 정도는 알 수 있어야 대화를 나눌 수 있을텐데. 나는 그걸 상상할 수 없다. 떠오르는 건 하나뿐이다. 감히 내가. 감히 우리가. 미술로 이걸 한다는 건 Y선생님이 말했듯 공작새 깃털 꽂듯이 슬픔으로 장식하는 느낌이 드는 일이다. 어떻게든 해야 한다는 생각에 무뎌져 그 기만들을 모른 채 하고 있지만 내가 이렇게 무뎌진 채로 어쨌든 약속했으니까 이 미술을 지속해도 괜찮은건가 하는 의문이 불쑥 든다. 정규 교육 과정에서 배운 그럴듯한 미술 언어로 대체 뭘 설명하고 있는건가 싶기도 하고. 특강을 들을 때 J작가는 자신이 찍는 당사자들에게 절대 이입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 때 약간 실망했던 기분이 든다. 그 사람은 뭔가 해결책을 가지고 있을 줄 알았는데. 내가 전시장에 작업을 설치하는 동안 슬퍼하는 사람들 옆에서 깃발을 들고 행진하는 사람들이, 현실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전에는 전시는 절대 하지 말자고, 미술관으로는 들어가지 말자고 우리끼리 얘기를 하곤 했었다. 이태원 참사에 대한 이야기가 조금 더 많은 공간에서 얘기되길 바라며 미술계로 결국 들어가버렸지만 말이다. 가끔 나는 뭘 하고있는 걸까 의문이 든다. 물론 어쩔 수 없이 미술을 믿어봐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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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 그러니까 우리가 그냥 이태원 가지고 미술하는 사람 그냥 이렇게 보여지기도 하고 우리가 실제로 하고 있는 행보가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고 해도. 그 상황에 대해서 너무 냉소적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우리의 태도가 원래 갖고 있었던 실천적인 부분을 좀 계속 짚어가면서 할 필요가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어.
그냥 약간 그러니까 완전 부정할 수는 없지 않나, 그러니까 우리가 어쨌든 전시 안으로 들어간 이상 이태원 가지고 작업한 사람이 된 것을 부정할 순 없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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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무얼 해야지,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지 하는 말을 싫어했었다. 닫아질 수 없고 닫아진 적 없는 것의 다음을 어떻게 상상할 수 있을까? 다음을 상상하는 일이 자연스러운 걸까, 다음을 상상할 수 없는 것이 자연스러운 걸까? 4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변화한 것들을 받아들이기로 마음 먹는 것은 용기일까 아니면 손 쉬운 정리일까? 답답함과 찌꺼기 같은 것들을 늘어놓고 쳐다보는 일, 해소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 해소라는 것이 애초에 우리의 목표는 아니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후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진다.